세종 대왕의 가계도로 보는 조선 왕실의 숨겨진 가족사

우리는 만 원짜리 지폐 속 세종대왕을 인자한 미소를 지은 성군(聖君)으로 기억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측우기와 자격루 발명, 영토 확장 등 그가 남긴 업적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합니다.

하지만 찬란한 업적의 이면, 궁궐의 깊은 침전으로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 혹독하고 잔인한 운명을 마주해야 했던 ‘인간 이도’의 지옥 같은 가족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 가장 번성한 가계도를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잔혹한 잔혹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세종대왕 가계도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봅니다.

1. 즉위 3개월 만에 맞이한 비극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본래 왕위 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형 양녕대군의 잇따른 기행과 불륜 등으로 인해 태종은 양녕을 폐위하고 셋째인 충령대군(세종)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왕위에 오른 세종을 기다리고 있던 첫 번째 비극은 아내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이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은 아들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외척의 힘을 반드시 누르는 성향의 인물이었습니다.

“장인 시온의 사사와 처가의 몰락”

태종은 세종이 즉위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장인인 영의정 심온에게 억울한 역모 혐의를 씌워 사약을 내립니다.

이로 인해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자매들은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했고, 소헌왕후 본인 역시 폐비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세종-대왕-가계도
세종-대왕-가계도

세종은 왕이었으나 상왕인 아버지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장인의 죽음과 처가의 몰락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종은 훗날 대신들의 폐비 요구를 침묵으로 거부하며 아내 소헌왕후를 끝까지 지켜냈으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지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 세종을 괴롭힌 두 며느리의 잔혹사

세종을 고뇌하게 만든 또 다른 가계도 속 문제는 바로 장남(훗날의 문종)의 세자빈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며느리인 휘빈 김씨는 남편인 세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세자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남편의 신발을 태워 가루를 내어 마시게 하거나 궁녀의 음모를 이용하는 등 금기된 비방을 쓰다 발각되어 즉시 폐출되었습니다.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 이야기”

이후 새로 맞아들인 두 번째 며느리 순빈 봉씨는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그녀는 궁궐의 답답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술을 자주 마시며 소란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자신의 시중을 들던 시녀 ‘소쌍’이라는 여종과 동성애(동성 연애) 행각을 벌이다 적발되는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순빈 봉씨 역시 7년 만에 폐출되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가문의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딸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3. 단 5년 만에 가족 4명을 잃은 부성애의 눈물

세종은 총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 도합 22명이라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많았던 만큼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참척(慘慡)의 고통도 깊었습니다.

세종은 생전에 자신이 무척 아끼던 첫째 딸 정소공주를 13세의 어린 나이에 병으로 잃었습니다. 이어 세 번째 세자빈이었던 현덕왕후 권씨가 훗날의 단종을 낳은 바로 다음 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소헌왕후 소생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과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연이어 전염병으로 요절하게 됩니다.

단 5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딸, 며느리, 그리고 장성한 두 아들을 모두 잃은 세종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눈병과 당뇨 등 육체적 질환까지 겹치며 말년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불교에 귀의해 마음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4. 세종 사후 벌어진 비극

세종의 가계도가 가진 가장 잔인한 비극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7년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는 8명의 대군(친형제)이 있었는데, 이 형제들 간의 권력 투쟁이 조선 왕실 잔혹사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장남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이찍 세상을 떠나자, 겨우 12살이었던 세종의 친손자 단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계유정난의 비극

그러나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은 왕권을 찬탈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수양대군은 자신의 친동생이자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을 사사했고,

단종을 지키려 했던 또 다른 친동생 금성대군마저 처형했습니다. 결국 어린 조카 단종마저 영월로 유배 보낸 뒤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자식과 손자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끔찍한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가계도가 얼룩진 것입니다.

결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의 삶은, 국가적으로는 축복이었으나 개인과 가족사로서는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잔혹사였습니다.

장인의 죽음을 방관해야 했던 사위, 며느리들의 기행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시아버지,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에 피눈물을 흘렸던 아버지,

그리고 사후 자식들이 서로를 칼로 겨누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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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가계도는 조선 왕실의 가장 화려한 업적 이면에 가려진, 한 인간이 짊어져야 했던 가장 무거운 운명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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